'이성구'에 해당되는 글 356건
- 2011/12/14 이성구 한국교회, 새로 시작해야 한다
- 2011/11/01 이성구 말의 포르노? 포르노에 포로된 목사?
- 2011/08/19 이성구 한국교회, 어디로 가야 하는가?
- 2011/07/04 이성구 유관순과 김연아 바라보기
- 2011/04/23 이성구 고신은 없다? (1)
- 2011/04/18 이성구 난파선 고신의 미래 (1)
- 2011/04/08 이성구 기독교보 사설, 이래도 되는가? (1)
- 2010/08/18 이성구 교회 개혁은 계속 되어야 한다
- 2010/07/14 이성구 고신총회여, 합동측의 둘러리를 자처하지 말라
- 2010/01/16 이성구 신년하례회 유감
설왕설래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
여당도 야당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여 우왕좌왕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어지럽히고 있다.
신당, 합당, 재창당 등 온갖 술수를 다 부리고 있다.
과연 무슨 새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정당의 수준은 어디서 결정되는 것일까?
정당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정당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정당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일 뿐이다.
다른 누구를 비난하면 곤란하다.
자기 얼굴에 침뱉기일 뿐이다.
그래도 새로운 시도는 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배우기를 계속할 것이다.
여전히 별수없는 인생이지만 머무르지 않고 달려야 넘어지지 않는 법이다.
교회는 어째야 할까?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당은 재창당 운운이라도 하는데
한국교회는 도대체 무얼하고 있는가?
교회를 사랑한다지만 겨우 한기총해체하라는 비난 정도 뿐이다.
그런데 그 비난은 더 거센 반발을 부르고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행정보류라는 소리로 잠재우려하고 있다.
행정보류는 일반적으로 교권을 거부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법인데
되레 연합기구가 교단을 행정보류시킨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국교회야말로 재창당이 필요하다.
모든 간판을 다 내리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고신교단에 고신교회 있는가? 개혁신앙따라 사는 고신목사가 있는가?
합동에는 분열외에 뭐가 있는가?
부산의 통합교회 지도자들은 연합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모양새다.
순복음도 순전한 복음과는 거리가 먼것같고
성결에도 성결함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감리교는 아예 감독이 없다!
한국교회 각 교단이 그 옛날 그 간판을 달고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 이름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오
그 이름이 무슨 차이를 말해주지도 않는다면 그건 아무 의미없는 겉치레일 뿐이다.
그러면서 성도들에게 허황한 소리를 한다면 그건 교회를 두번 해하는 일이다.
한국교단 교파이름내려놓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 연합 정도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아무 의미없는 분열과 분리를 끝내고
교회의 본질을 찾아 대행진을 시작해야 한다.
2012년
장로교회 100주년에
아예 장로교부터 간판내기 운동을 펼쳐보면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갑자기 주님의 반응이 무척 궁금해진다.
온 세상이, 저지른 사람도 받은 사람도 세속 신문도, 모두 금권선거라 했고, 그래서 법원의 통치를 받았던 한기총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우리 교단 소속 인사들은 과연 금권선거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지를 묻는 것은 총회의 총대로서 너무나 당연한 책임이자 권리이다. 그런데 온갖 언어를 다 동원하여 전혀 문제가 없음을 공언하면서 의문을 제기한 정목사에게 사과를 요구하였다. 일설에는 녹음된 자료가 있다고 하기도 하였지만 정목사는 본인들이 끝내 부인하는 일이라 한 걸음 물러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회가 그렇게 끝을 내었다고 하여 사실이 없어지거나 의혹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사법부에 고소 고발을 하여 정식으로 수사가 시작된다면 얼마든지 전혀 다른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세상법정에 맡길 수 없고, 수사권이 없는 개인으로서는 그 정도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두고, 한기총에서 가진 직책으로 보아 관련이 없을 수 없는 한 분이 기독교보에 '말의 포르노'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일을 두고 고신대 사무처장을 지낸 김영수 장로가 인터넷 신문인 '코람데오닷컴'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오늘 이 글은 거룩한 총회 석상에서 목사가 한 공적 발언을 두고 '포르노'라는 이름으로 무참한 공격을 가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올리는 글이다. 여기서 '말의 포르노'라는 글 전문을 볼 수 없음이 아쉽기는 하지만 행간을 통해 그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직접적인 반론은 코닷에서(kscoramdeo.or.kr)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코닷에 올린 댓글을 옮겨봅니다.
1. 포르노라는 용어선택 자체가 매우 추악한 일입니다.
그러한 용어는 목사가 입에 담을 것이 아닙니다. 포르노는 성을 주제로한 문학, 예술을 가리키며 쉽게 말해 외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총회석상에 목사가 한 발언을 어디에 비할 데가 없어 포르노라는 추악한 용어를 사용하는지 기가막힙니다. 그 발언은 반드시 취소되어야 합니다.
목사의 언어는 강단이 아니라도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문의 글은 얼마든지 멀리갈 수 있는데 그런 부덕한 용어를 함부로 끌어다 쓰는 그 용기가 가상하지만, 그런 식으로 사람을 자극하는 것은 거룩한 복음과 나라를 선포해야 할 목사의 품위를 망가뜨리는 일입니다. 일반교인들이 기독교보를 많이 보지 않아 다행이지만, 고려파 목사, 그것도 소위 원로라는 지칭을 받는 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에는 섬찟하기까지 합니다.
2. 부패한 한기총 선거와의 관련성에 대한 사실여부는 분명히 따져보아야 합니다.
장로님의 기사에서 상세하게 언급한 대로 모든 교계 신문를 비롯하여 일반세속 신문에서도 엄청나게 크게 다룬 한기총 금권선거 파동에 우리 교단의 지도부가 단 한명도 개입되지 않았다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그게 과연 신뢰성이 있는 것일까요? 제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기총의 선거부정이 수년간 계속되었고, 당선된 회장이 돈을 많이 썼다고 하고 받았다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는데, 우리 대표는 한 사람도 받은 적이 없다는 말이 과연 사실일까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고신의 표는 받지 않아도 되겠다고 여긴 것이라는 말인데, 고신은 그정도로 아무 가치가 없는 존재일까요?
아니면 고신사람들은 누구도 일절 한푼도 받지 않는 것으로 인정되어 있다는 말이어야 하는데 그런 소리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음은 무슨 연유일까요? 사고가 드러난 이후 각 교단 총무들을 오마 특별기도회를 인도한 사람이 우리 교단 사람이라는 소문나 있는데, 아무런 대가없이 그야말로 한기총을 위하여 그런 일을 앞장서서 했다는 말인가요? 우리 교단이 언제부터 그렇게 한기총의 중심이 되어 일한 적이 있으며 과연 고신이 한기총에 그렇게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이번 다락방 영입사건의 핵심도 고려파라는 말인가요?
3. 한기총이 부정하고 부패했다면 교단대표들은 교단에 보고했어야 합니다.
한기총의 부정은 명백합니다. 여러 사람이 이실직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법정관리를 받았습니다. 부정하고 부패하다는 데는 전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총회는 단 한번도 한기총의 부정하거나 부패한 선거에 대하여 보고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대표들은 전혀 그것을 몰랐다는 것인가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왜 그렇게 부패한 한기총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고 열심을 보인 것인가요?
이 사태는 반드시 진실이 드러나야 합니다. 총회에서 공적으로 발언한 목사의 말을 목사로서 입에 올릴 수 없는 단어인 포르노 같은 말로 비하하는 한심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안 됩니다. 이참에 총회장은 직권을 발휘하여 한기총 선거에 고신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분명히 밝히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적반하장격인 추악한 언어폭력이 다시는 고신교회에 난무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4. 기독교보 편집진도 아무 언어나 신문에 오르지 않도록 가려가며 게재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은 신중해야 하며 교단언론은 더욱 교단의 정체성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0세기를 풍미하면서 복음주의권의 대부역할을 했던
존 스타트 목사님이 세상을 떠났고,
옥한흠 목사가 그 보다 앞서 부름을 받았으며
하용조 목사까지 이 땅에서의 사역을 놓았다.
그들로 인하여
잠시나마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보다는
아름다운 삶이 소개되어 다행스러웠다.
그러다가 문득
과연 한국교회의 역사는 누가 어떻게 이끌어가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누가 우리 교회의 역사를 형성해가는 것일까?
한기협NCCK 의 목소리를 요즘 듣기 힘들다.
아무런 힘이 없어보인다.
WCC총회 문제는 통합측이 독자적으로 끌고가는 느낌일 뿐
NCCK의 역할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들을 홀대한다며 몽니를 부리는 듯하다.
한기총은 아예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부패한 선거를 치렀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졌는데도
그 밥에 그 나물로 다시 밥을 만들고 버젓하게 상을 내미니
아무도 쳐다보지를 않는다.
병약한 한 사람의 목소리가 한국교회가 내는 소리만큼 크게 들리는 것을 보면
한국교회의 문제는 조직의 문제는 아님이 분명하다.
한기통도 한기협도 문제가 아니니, 정답도 아니다.
정직하고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들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느냐가 한국교회의 내일을 가름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노회나 총회는 그런 풍토를 만들지 못한다.
여전히 꾼들이 설치고 엉터리들이 판을 짠다.
찬송가공회처럼 찬송에는 관심없고 자리와 돈에만 눈이 먼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좀 먹고 있다.
숫자놀음에만 집착하는 교회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병들어가고 있다.
정직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매우 상식적인 교회
그런 주님의 교회가 많아지는 내일을 보고 싶다.
유관순과 김연아 바라보기
또래 소녀가 만든 역사
엊그제 어느 신문에 누군가가 유관순과 김연아를 비교한 글을 올렸습니다. 3.1절을 맞으면서 갓 겨울 올림픽을 끝낸 김연아의 얼굴이 유관순과 오버랩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보긴 했지만 어느 신문인지 도통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제목만 보았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읽어보지를 못해 너무 아쉽습니다. 그런데 제목만을 놓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두 소녀는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김연아가 두어 살 나이가 조금 많기는 합니다만 또래집단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두 소녀는 둘 다 자기 시대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둘이 역사를 쓰는 방법은 너무나 다릅니다. 하늘과 땅만큼 다른 모습입니다. 유관순은 가냘픈 몸으로 무너지는 나라를 붙들고, 가진 모든 것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전부 바쳤습니다. 10대 소녀의 젊음이었지만 자기를 위해 불태운다든지 하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일제의 억압에 반대하고 만세운동에 나서는 등 소녀의 꿈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김연아는 오직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는데 전념하였습니다. 올림픽에서 자신이 연마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 유일한 관심이었습니다. 김연아는 나라나 민족을 위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에게 대한민국은 전혀 관심 밖이었습니다. 우승 직후 인터뷰를 통해 밝힌 심정은 그저 자신이 준비한 것을 전부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금메달을 땄으니 이제 어께에 눌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며 그냥 편안해했습니다. 그녀가 가진 관심은 부모를 비롯한 자신의 가족과 흥분하는 팬 정도였습니다. 올림픽 우승이라는 최고의 영광을 얻은 그날 연아는 그냥 마음껏 먹고, 놀고 싶은 생각이 전부라고 했습니다. 올림픽에 다시 도전하여 국가의 영예를 빛낸다든지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대도 그렇기는 하지만 삶의 방법이 완전히 다른 유관순과 김연아. 두 사람을 두고 역사는 모두 대한민국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동일하게 평가할 것입니다.
다른 역사 쓰기
김연아도 울고 유관순도 울었습니다. 그런데 김연아는 자신이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역사적 사건을 이루었기 때문에 기뻐 울었다는 식으로는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반면 유관순은 비장한 각오로 눈물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녀는 조국을 위해 목숨 걸고 만세를 부르다 잡혀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고 모진 고문에 울었습니다. 주권을 빼앗긴 조국의 비극을 서러워하며 울었습니다. 김연아는 지난 해에만 9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며 호화로운 미래를 보장받고 있으나 유관순은 그저 몸 바쳐 헌신하였을 뿐 아무 것도 누려보지 못하였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았을 뿐입니다.
전혀 다른 시대에 태어난 두 소녀는 하늘과 땅처럼 다른 세계를 살았습니다. 유관순은 자신의 은사를 전혀 살려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림픽을 제패한 김연아는 철저하게 자신을 위하여 살았으나 사람들은 그녀를 이기주의자라거나 헌신을 모른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대를 따라 다른 방법으로 살아간 것입니다. 유관순은 20세기 초엽,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 일본에 의해 무너져내리던 나라를 끝까지 붙들려 한 공적을 두고두고 평가하여 그녀를 열사(烈士)라고 부릅니다. 김연아는 한 세기가 지난 시점에 등장하여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월등하게 능가하는 실력을 보여 어엿한 독립국가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등급 높이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방법은 너무 다르지만 나타난 결과는 동일합니다. 모든 사람이 독립투사일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세계를 제패할 만큼 뛰어난 운동선수일 수도 없습니다. 별 볼일 없이 그냥 세월 따라 흘러가야 할 한 어린 사람들이 자신의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 역사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우리라고 그러지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영역과 스케일은 전혀 다를 수 있지만 누구라도 조금씩은 어디엔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이 땅의 영적 역사를 다시 쓰는 유관순과 김연아가 한국 교회, 주일학교를 통하여 벌떼와 같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이 노회가 지난 4월 21일 봄노회를 마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노회는 이 성명을 통해 한기총 사태의 근본 원인이 대표회장을 선출함에 있어
관행이 되어버린 금권선거에 있다고 본다고 결론지었다.
과감하다.
이광선 목사가 속한 노회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직설적이다.
그런데 그런 성명보다 훨씬 중요한 내용을 그들은 포함하고 있다.
"(이는) 많은 교단 내 총회장 혹은 부총회장 선거에 만연된
금권선거의 연장선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서울노회는 자신들도 매년 반복되는 금권선거의 악습을 예방하지 못하고
바르게 대응하지도 못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시인하며 통회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반성을 말로 끝내지 않았다.
응분의 책임을 지기 위하여 9월 총회에 총대를 파송하지 않기로 한다고 선언하였다.
통합 총회내에서 두번 째로 많은 58명의 총대를 파송하는 노회가
총대권 행사를 포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총회에 나가지 않으면 총회의 모든 직책에서 제외된다.
그것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누가 장자교단일까?
한기총은 아무 잘못이 없다며 끝까지 두둔하고 나서는, 배짱좋은 합동측일까?
아니면 가타부타 말이 없는 고신 지도부일까?
아니면 총대파송을 포기하겠다는 노회가 있는 통합측일까?
조용기 목사는 새벽기도회 시간에 성도들을 향해 무릎을 꿇었고
자신으로 인하여 많은 환란이 있었음을 자백하였다.
해방이후 양심의 소리를 자처했던 고신은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복음병원 부도사태이후
고신은 더 이상 고신이기를 이미 포기하였다.
모든 것이 과거형이다.
노회임원이 되면 회의비 받아 놀러갈 궁리나 하고
총회는 부서마다 나들이 궁리나 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교회는
더 이상 빛과 소금이기를 포기했음이 틀림없다.
2011년 고난주간, 부활절에
주님의 오심을 더욱 간절히 소망한다.
항로를 잃어버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디로 갈 줄을 모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력을 잃어버렸다.
한기총이 금권선거를 통해
교회의 기관임을 포기한 모습을 보였음이 분명한데도
그 회의에 참여한 실행위원 네명은 아무 말이 없다.
돈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밝히라는 요구를
애써 외면해 버린다.
모른채 할 일이 아니다.
총회장도 총회임원들도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고신이 어떤 교회인가?
신사참배한 교회를 향하여 끝까지 회개를 촉구하느라
교회로부터 쫓겨난 역사를 가진 우리가 아닌가?
어떻게 부정한 행위를 묻는 질문을 받을 지경이 되었으며
질문을 받고도 말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총회나 노회에서 재판을 받으려면 재판 청구인이 돈을 내야 한다.
서류를 경유해달라고 하면 시찰회 경비를 내라고 요구한다.
어느 새 고신교회는 천민자본주의도 갖지 않는 돈중심 재판을 법제화하려한다.
억울한 상황이 벌어져도 돈이 없으면 교회의 재판도 받지 못한다.
억울한지조차 따지지 않고 돈부터 내라고 한다.
세속법정에서도 판사나 검사의 여비나 밥값을
억울해서 고소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법이 없다.
돈이 없어 변호사를 구하지 못하면 국선변호인을 붙여준다.
억울함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재판비용은 물론 지는 사람이 내도록 한다.
그나마 비용은 검사 판사의 회의비나 밥값이 아니라 변호사 비용이다.
일반 세속 법정이 고신교회의 법정보다 훨씬 자비하고 정의롭다.
제일문창교회가 사라지고 있다.
2분, 3분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판이다.
성도들의 울부짖고 있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코닷은 문창교회 성도들의 울음판이 되고 있다.
그런데 아무 대답이 없다.
마산노회도 그 누구도
이들의 울음에 귀를 기울여줄 사람이 없다.
이런 형편인데 고신호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고신교단에 옳고 그름을 판단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기관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인가?
그냥 각기 제 소견에 옳은대로, 자기 형편대로
알아서 살아가라는 것인가?
이 형편에 교단은 무슨 소용이라는 것인가?
흔들리는 교회가 한 둘이 아니다.
기막힌 소문들로 가득하다.
목사들의 도덕 불감증은 치유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원로 목회자들의 탄식속에 흘러나고 있다.
총회가 내놓은 헌법 개정안 중 교회정치가
노회 수의과정에서 부결되었다고 한다.
역사에서 잘 발견하기 어려운 일이다.
교단의 흐름은 역사성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까지 사용한 헌법을 만들었던 원로들과
제대로 논의과정을 거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바깥에서 흥분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교회는 무엇때문에 존재하는가?
교단은 무엇때문에 존재하는가?
도대체 장로교회의 존재방식은 어디로 가 버렸는가?
고신은 과연 장로교회인가?
고신은 과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고신은 이제 성직자 중심주의 교단으로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는가?
다시 물어본다. 누군가 대답좀 하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기독교보 사설, 이래도 되는가?
고신교단의 주간신문인 기독교보, 특히 사설을 읽으면 늘 마음이 불편하다. 논리의 비약과 편견이 심하고, 그 주간의 관심사와 동떨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냥 참아 넘길 수밖에 없다. 논설위원을 임명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설을 혼자 쓰는 이상 좋은 글, 균형 잡힌 글이 나오기가 어려운 것은 명약관화하다. 게다가 누가 그 신문의 사설을 열심히 읽겠는가라고 생각하며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독교보 사설은 갈수록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 4월 9일자 사설은 감당하기 어려운 글이라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가 금권선거로 한창 시끄러워지면서 양심고백들이 터져 나왔다. 길자연 목사 소속 교단인 합동측 목사 30여명이 1백만원씩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어서 전임회장 이광선 목사도 금권선거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돈을 쓰지 않았더니 떨어졌고, 그래서 한기총 개혁을 위하여 돈을 써서 당선이 되었다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거기다 이런 저런 목사들이 돈을 받았고 썼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였다.
그러자 기독교보는 수주전의 사설을 통하여 뒤늦은 고백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고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물론 금권선거를 한 당사자들에 대하여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그 때 그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기막혀 했는지 모른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한마디 없고, 오히려 늦게나마 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부정은 부정일뿐이고 그 부정은 어떤 방법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교회의 신문 사설이 그런 식의 발상을 표현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4월 9일자 논설이 이어진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앞 뒤 문맥, 주어 동사가 전혀 연결되지 않으며 사실 관계도 맞지 않다. 문장구성의 기본원칙을 벗어나고 있다. 사설 제목부터 한심하다. ‘한국교회의 위상 걱정’. 지금 한국교회가 위상을 걱정하고 있을 시간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부르짖고, 곳곳에서 기도회가 열리고 있으며, 한국 보수교회의 대표적 연합체 운영권이 변호사에게 넘겨진 상황이다. 지금 위상 운운은 배부른 소리이다. 지금은 위상을 걱정할 시간이 아니라 어떻게 구체적으로 회개하며, 어떻게 한국교회가 돈과 명예와 정욕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할 시간이다. 한 두 군데만 구체적으로 읽어보자.
“개신교가 세상 밖으로 나와서 소리 지르는 것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서 쇠고기 파동 때 한 손에 십자가를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소리를 질렀으나 모든 것이 잘못된 결과여서 자숙을 요하는 것이 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하에서는 인수위원회 구성과 사찰을 무너뜨려 달라는 기도와 함께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담대함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문장이며 무슨 소리인가? 노무현 정권 들어서서 쇠고기 파동이 일어났다니 어디서 살다가 온 사설자인가? 쇠고기 파동 때는 진보파들이 나섰고, 성경이나 성조기가 아니라 촛불을 들었다. 갑자기 인수위는 무엇이며, 대통령 인수위가 사찰을 무너뜨려 달라고 기도라도 했다는 말인가? 지금은 누가 죄인으로 무릎 꿇는 담대함을 보였음을 논할 시점이 아니다. 길자연 목사의 엉뚱함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어지는 문장은 한국교회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가득하다. 한국교회는 축복받았고, 세계적 대형교회 50개중 23개가 한국에 있음을 자랑한다. “한국교회는 정치 사회 문화 다방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무너지는 한국교회, 아무래도 고쳐지지 않는 부정과 부패에 가슴아파하는 일반 시민이 부지기수인데, 안티기독교 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는데, 기독교가 모든 종교 가운데 가장 불신을 당하고 있다는 통계가 쏟아지는데, 고신 기독교보의 사설은 홀로 한국교회의 찬란함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짧은 사설의 마지막은 더욱 가관이다. “때로는 교회를 출석하는 몇 몇 소수의 비중생인들로부터 비난과 폭로 전 그리고 시기 질투 사심 등 인간적인 요소들로 말미암아 흙탕물이 튀기기는 하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확신하며 교회의 위상이 더 확장되고 높아질 것을 믿는다.” 이 문장은 현금의 교회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 분명하다. 그는 지금 이 말을 하기 위하여 찬란한 이야기를 끌여 들였음이 분명하다. 지금 양심고백하고 한기총 해체를 주장하는 몇 몇 소수의 사람은 ‘비난 폭로전 시기 질투 사심’ 등 인간적인 요소들을 가진 ‘비중생인들’이라고 못 박는다. 그들이 튕기는 흙탕물에 의해 현재의 한기총 주류세력이 약간 더렵혀지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 금권선거, 법정다툼 등으로 인하여 마침내 ‘교회의 위상이 더 확장되고 높아질 것’을 굳게 믿고 있다. 현재의 한국교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의 사태를 ‘비중생인들’이 시기 질투 사심으로 비난과 폭로 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그래서 흙탕물이 튀고 있다고 보는 이 감당할 수 없는 ‘중생인’의 용기 앞에, 나 같은 죄인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의 머릿속은 그냥 하얗다. 주님, 나를 도와 주옵소서!
어떠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
학교보다 힘드는가,
재미는 있는가,
보람이 있는가
뭐 그런 것을 알고 싶은 것일 터이다.
설마하니 목사가 교수보다 더 돈이 되느냐고 묻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으로야 학교가 훨씬 낫다.
목회의 즐거움이 크다.
목회의 보람도 크다.
목회하며 꿈꿀 일이 많아 좋다.
날마다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문제는 교회를 벗어나
노회나 총회로 얼굴을 돌리면
여전히 재미없는 일이 많다.
10년전보다 노회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현재의 노회는 이전보다 훨씬 경직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목사들의 연령이 젊어졌는데도
사고는 훨씬 덜 성경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돈이 일만악의 뿌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돈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아진 느낌이다.
총회나 노회나 '공돈' 쓰기에 발이 너무 빠른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한국의 보수교회들이 힘을 합하여 WCC를 비판하는 책을 내었다.
2013년 세계총회를 앞두고 바람을 차단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지금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일까?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그게 그렇게 급한 일인가?
일반 성도들과 WCC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아니 목사들이라고해서 WCC가 직접 무슨 상관이 있는가?
지금 WCC가 무슨 잇슈를 내놓고 교회를 흔드는 일이라도 있는가?
지금 급한 것은 따로 있다.
한국교회를 수치로 몰고가는 일은 따로 있다.
부목사가 담임목사에게 폭행을 가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청년목회로 지방출신 대학생을 모조리 한곳으로 끌어오으면 목사가 성추문으로 물러나는
목놓아 울일이 일어났다.
청년들에게 이제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목사를 망하게 하고
교회를 무너지게 하는
그런 일들에 대한 사례조사를 하여
낱낱이 고발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책을 내는 것이
오히려 한국교회가 해야 할 가장 급한 일이 아닌가?
목사와 장로의 소통불능사태
교회재정의 불투명성
'선교'를 해외 여행의 빌미나 도구로 사용하는 부정직한 행태
여행지로 변한 선교지,
가이드나 여행꾼, 좀더 그럴듯하게는 학자로 변신하는 교회설립을 위한 선교사들의 정체성 불명
교회와 전도를 빙자하여 자기 자리, 장사속이나 차리는 기독병원들, 찬송가 공회 등 교파 연합 기구들
교회개혁을 빙자한 헐뜯기씩 교회 언론
목사들의 제식구 감싸기
장로들의 권력욕구 채우기
교회의 social club화
헌신없는 신학자들이 펼치는 내용없는 화려한 글놀이, 말놀이
은사를 주장하는 기도원. 기도자들의 허구성
무당 푸닥거리 같은 소란한 경배와 찬양...
생각할 일이 한두가지이며
물리칠 일이 하나 둘인가?
어디가 급한지나 알고 교단들이 정책을 세우고 칼을 갈아야 하지 않는가?
교회의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한다는 말인가?
지금 교회를 갉아먹는 문제에는 완전히 등을 돌리면서
교회의 재정을 엉뚱한 불필요한 일에만 쏟아붓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을 것인가?
그저 답답할 뿐이다.
2013년 부산에서 열리게 된 WCC 총회 문제를 두고 한국교회가 갈등을 빚고 있다. WCC는 세계교회협의회이다. 세계의 교회가 하나되기를 갈망하는 교회들의 협의체이다. 그런데 이 협의체가 오히려 교파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런 현상을 또 볼 수 있을까? 교회 연합운동체가 교회 갈등유발의 진원지가 된다면, 이것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 WCC 총회개최를 두고 벌이는 논쟁을 바라보노라면, '세계속의 한국', '세계 2위의 선교사 파송 국가'라는 세간의 명성과는 달리 한국교회가 여전히 1950년대식 분열주의 사고에 매여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장래를 위하여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으며, 특히 공연히 논란에 빠져들고 있는 고신 총회가 과연 이 사태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현재의 논쟁의 부질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곳곳에서 WCC의 정체성이나 신학 문제등에 대하여 논쟁을 벌이고 있으니 필자는 여기서 다시 WCC의 정체성에 관하여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물론 앞으로 필요하면 뛰어들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현재는 그럴 이유가 없어보인다. 다만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논쟁 발생의 메카니즘에 관한 것과 이 논쟁에서의 고신의 역할에 관한 것으로 고신총회는 더 이상 어리석은 논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현재상황을 바르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1. 논쟁 제기의 비논리성
WCC총회가 왜 이 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왜 보수교단들은 기독교국제기구의 총회개최에 대하여 시비를 거는 것일까? 공기관이 하는 일에는 논리적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만약 교회가 남의 집회에 대하여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늘 정당한 일이라면 모든 집회에 동일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한국의 보수교회들은 불교계의 모임에 반대의사를 표현하는가? 한국의 보수교단들은 통일교나 신천지, 박무수 등의 집회에 반대를 천명하며 이런 식의 논쟁을 벌이는가? 근본적으로 교회가 다른 교회의 일에 대하여 반대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마치 한나라당에서 친이 친박의 계파싸움을 하는 것과 동일한 일이다. 어느 누가 그 일을 옳다할 것인가? 나와 동일하지 않으면 틀린 것이라는 논법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다른교회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몰라도 굳ㅇ디 반대운동을 하는 것은 전혀 논리성이 없는 일이다.
2. 논쟁제기의 비합리성
WCC에는 장로교 통합, 감리교, 기장, 성공회 등이 가입되어 있다. 지금 WCC를 반대한다는 것은 곧 이들 교단들을 반대하는 셈이된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이 교단들이 원하는 행사를 반대하는가? 이 교단들이 이단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교단마다 생성의 역사와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신학적 강조점에는 차이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그 교단들이 공교회성을 갖지 못했거나 비성경적이거나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모든 지역에 지역교회를 세우고 활동하고 있는 역사가 있는 교단들의 활동을 반대하는 것은 전혀 합리성이 없는 일이다. 한국교회는 이들 모든 교단보다 뒤늦게 이 땅에 세워진 교회이다. 어떻게 후발주자들이 이미 세워져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해 온 교회들을 부정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논쟁을 제기하는 자체가 전혀 합리성이 없다.
3. 합동측과 통합측의 정통성 시비에 공연히 참여하는 고신의 무목적성
솔직하게 말해 예장 합동이 중심이 되어 WCC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유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합동과 통합의 정통성 시비에 고신이 공연히 말려들 이유가 없다. 도대체 왜 고신의 지도부가 WCC총회 논쟁에 휘말려 드는 지 알 수가 없다. 합동과 통합은 역사적으로 분리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열하는 우를 범하였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파벌 싸움에 박형용박사의 '3천만환' 사건은 보수파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는 호기를 제공하였다. 3천만환이라는 거액을 신학교 부지를 불하받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로비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가 자금을 날려버리는 일이 발생하자 갈등이 폭발하였고, 결국 분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일로 분열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였고 결국 WCC와의 관계 문제를 끌여들여 분열을 정당화하였다.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할 '신학'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분열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이 있어 합동측이 공연히 남의 집회에 시비를 거는 일에 왜 고신의 지도부가 함께 거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합동이나 통합 두 교단 모두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신사참배에 반대한 고신측 인사들을 총회에서 배제하는 일에 마음을 같이 한 사람들이다. 합동이나 통합 모두 고신의 인사들을 반대하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무런 역사적인 관계도 없는 WCC총회 여부에 대하여 그렇게 열을 내고 거품을 품어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통합 감리교 성공회 등 다른 교단들의 모임이나 활동에 대하여 언제 반대하거나 열을 낸 적이 있는가? 왜 평소에 전혀 관심이 없던 일에 굳이 나서서 교회간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려 하는가? 왜 합동원칙을 어겨 관계를 단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이제 굳이 나서서 합동측의 둘러리를 서는 데 그렇게 열심인가? 이것은 고신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우리가 이런 반대운동을 통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4. 절차를 어기는 비합법성
WCC 총회에 대하여 총회가 어떤 태도를 결정한 적이 없다. 다만 대책에 대한 연구를 맡겼을 뿐이다. 그런데 왜 총회가 열리기도 전에 마음대로 WCC 총회 반대운동에 참석하여 활동하는가? 그것은 총회의 질서를 어기는 일이다. 위원 몇사람, 총회 임원 몇몇의 의견이 교단 전체의 의사가 될 수 없다. 어떤 일도 절차를 어기면 모든 행동이 무효가 된다. 민주주의는 절차 민주주의이다. 그 누구도 함부로 대표연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누구든지 절차를 존중해야 한다. 더 이상 WCC에 관련된 논의에 마치 자신이 교단의 대표성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지 않기를 요청한다.
5. 성경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우리 교회의 절대적 행동강령은 성경중심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명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고 성경은 말한다. 명확한 진리문제가 아니면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WCC가 총회를 부산에서 여는 것이 진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WCC의 존재가 만약 진리문제라면, 지금까지 우리교단은 그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않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WCC총회에 관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관여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가입여부를 논한다면 모를 일이지만. 그들이 대회를 여는 것은 그들의 결정이요 그들의 주권에 속한 일이다. 남의 일에 대하여 갑론을박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결코 그런 논의가 한국교회 전체에 덕이 되지 않는다. 지금 고신교회안에 있는 장로교 통합, 감리교 출신 성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에게 WCC찬반여부를 묻기라도 할 것인가?
교회는 하나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신학도 신조도 별로 다르지 않다. 통일한국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헌신해야 하는 우리가 교회들의 연합에 대하여 비관적이고 파괴적으로 대한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그리고 통일한국이 되면 우리가 설자리도 없을 것이다.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운행에 동참할 수 있도록 삼가 유아독존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교계신문을 보라. 줄줄이 곳곳에서 신년하례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런데 여러 '지도자들'은 아마도 신년하례회를 두차례 이상 참석해야 할 것 같다.
각 노회, 혹은 지역노회 연합으로 신년하례회를 가지고 있는데다
전국장로회 연합회가 신년하례회를 다시 열고 있다.
오랫동안 이 모임들이 진행되어 왔지만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아 하던 방식대로 모임이 지속되고 있다. 금년에 처음으로 이 행사에 참석하면서 눈에 띄는 점도 있고 간과할 수 없는 점들을 발견하게 되어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진다.
1. 중첩된 행사
교회는 복음전도가 최우선이고 교회의 설립이 가장 절실한 과제다. 그런데 신년에 인사하는 일에 노회별, 총회별로 두번씩이나 시간을 내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사라는 것도 정말 형식적이어서 전혀 인사가 되지 않는다. 과연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일까?
2. 과다한 스케쥴
한 번의 모임에서 예배, 수많은 기관장의 인사, 강의, 식사까지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니 식사시작시간이 오후 1시 반이 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인사모임이 이렇게 길고 무거워야 하는가?
3. 참가대상의 모호
교단 지도자 신년하례회....누가 지도자인가? 노회를 비롯한 기구의 장이 되면 지도자인가? 어떤 목사, 어떤 장로가 지도자며, 혹은 지도자가 아닌가? 이상한 잣대가 필요해진다.
4. 신년하례회와 교회력
신년을 맞아 축하하는 모임을 갖는 것이 과연 교회력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성탄절이나 부활절을 맞아도 노회, 총회가 축하인사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데, 신년은 유독 그래야 할 무슨 이유가 있는가? 너무 세속적이지 않은가?
5. 과다한 경비
신년하례회는 먹어야 한다. 호텔서 한끼 식사를 하려면 4,5만원의 돈이 들 것이다. 500명이면 적어도 2천만원 이상의 돈이 들어야 한다. 그외 경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개척교회 두곳이상의 지원금이 밥 한끼로 날아간다. 물론 먹을 때가 있다. 그러나 선교센터 짓는다고 애를 쓰는 금년에 굳이 그래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해쯤은 아주 소박하게 모이고 돈은 모아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6. 합동측과 통합측과의 비교
합동측은 교단 회관내의 여전도회관에서 신년하례회를 가졌고, 통합측은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소강당에서 모였다. 한국에서 가장 큰 대형교단이 그렇게 소박하게 신년하례회를 열었다고 하면 한국 절제운동의 선두주자인 송상석 목사의 전통을 가진 우리 교단은 생각좀 해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7. 하례회 주관의 문제
우리 교단은 전통적으로 전국장로회가 주관하여 이 모임을 갖는다. 그러나 합동 통합은 총회가 주관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의 경우 모임의 주관은 장로회가 하지만 경비는 대부분 교회가 소위 광고비로 지불한다. 교회가 교회안에서 교회를 대상으로 광고한다는 것도 정말 우스운 일인데, 그렇더라도 교회가 경비를 지불할 바에야 총회가 주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8. 내용의 문제
신년하례회를 개최하고 지도자를 모셨다고 하면, 인사하는 일에 인정된 '어른'을 대접하는 일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각 기관장들이 연설로 인사하고 인사를 받았다면, 교회의 원로들을 앞으로 초치해 그저 함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역대의 총회장, 이사장 등 원로들이 참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른 대접을 않는 것은 '센머리 앞에 일어서는' 성경적 원리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9. 제안
나는 우리 교회가 신년 하례회가 아니라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 '성탄축하잔치'나 '부활절 축하파티'를 여는 것이 훨씬 바람직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하든 그리스도 중심으로 영위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 교회들이 기쁨을 마음껏 표현하는 아름다운 파티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라도 지도자들이 먼저 시도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단순히 신년을 축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부활로 인한 새로운 삶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이 훨씬 의미있는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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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기치를 높이든 지도자들의 운동조직들 간에 연합과 통합을 이루어가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인 것 같은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