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느 날 갑자기
정말 느닷없이 비교적 건강하시던 어머니의 무너짐을 보았습니다.
가끔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다는 이상한 소리를 들으며
그게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고 있는 사이
어머니는 그렇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강한 분이셨습니다.
물론 몸은 늘 여렸습니다.
아픈 곳도 많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아픈 어머니를 보아왔습니다.
이따금씩 누워 계셨습니다.
그래서 국민학교 시절
부엌에 들어가 불을 때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린 동생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하고
위험스러운 유산을 하면서도
어머니는 변변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골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기도 하지만
함안에 살던 시절 어머니는 내가 보아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퍼머를 하는 게 좋다던 어느 친척의 말을 듣고
머리를 말아 올렸다가
어머니는 가슴 찢어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게 어떻게 목사의 아내가 할 머리 모습이냐
다짜고짜 책을 마당으로 집어 던지며
전부 불태워버리고 목회를 그만두겠다시던 아버지의 우직함에
어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장작개비
깨진 소주병
심지어는 낫까지
우리 집 앞마당은 삿대질과 욕설과 고함의 아수라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여동생의 불신결혼을 반대한다고
목사새끼 죽여버리겠다는 소리를 하는 전직 전도사 오빠의 지게 앞에서도
태연스러운 아버지.
사태의 추이를 숨을 죽이며 부엌 방에 숨어 지켜보는 어머니와 아들.
그런데 예배당에 앉아 계신 아버지를 어쩌지 못한 그 불한당 같은 타락자는
느닷없이 낫을 들고 부엌 방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어린 나는 부엌으로 재빨리 내달았으나
낫을 눈앞에서 보아야 했던 어머니의 가슴은 그 때부터 완전히 멍이 들었고
조금만 놀라도 자주 식은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우직하게 사신 아버지를 둔 죄로 어머니는 늘 놀랜 가슴으로 살아가셔야 했습니다.
사모로서의 생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고
아쉬움의 세월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불평과 불만을 혼자 새겨야 했고
말못할 어려움은 홀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가난한 교회의 가난한 살림은
곧 우리 살림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3000환의 사례를 사택 마루에서 계산해 주던 시절만 해도
제법 괜찮은 때였다는 데
십일조 떼고, 무슨 헌금 떼고
국민학생인 내 눈 앞에서 원천 징수 끝에 넘겨주던 몇 푼의 돈은
일, 이 주일이면 사라지곤 하여
어머니는 손끝이 늘 시렸습니다.
그러나
삶의 불평을 모르는 어머니셨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 더러는 이 집 사라며 남의 돈 빌려주고
이 땅 사라 땅 골라주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무지하신 채 돌아가신 아버지를 두고
이따금씩 원망 비슷한 말을 하시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삶이 어렵다고 원망하시는 모습은 기억에 없습니다.
겨우 7,80명의 교인들과 함께 15년을 보낸 후
천 수백명으로 성장한 교회를 보며 너무 기뻐하셨던 아버지와 함께
당신의 생을 몽땅 바친 구포제일교회를
아버지의 무너진 몸과 함께 떠나게 될 때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는지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귀에 이미 너무 익어버린 아버지의 번호인 2491번
전화설치비를 줄테니 그냥 갖게 해 달라는 어머니의 그 작은 간청마저
매정하게 거부한 교회와 어느 장로님의 처사에 대하여서는
너무 섭섭하여 자주 들먹이셨습니다.
사람을 섭섭하게 하는 교회라는 생각에 아예 떠날 것을 권유했지만
그래도 생애를 쏟아 사랑한 교회로부터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였습니다.
모순으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교회를 향한 사랑을 늘 담고 사셨습니다.
서른에 혼자 되신, 칼날 같은 시어머니 밑에서 고된 시집살이에 젊음이 삭아들었고
문자 그대로 처자를 버려 두고 주님을 따르려는 듯 살아가시는
남편에게도 말못하고
목사가 된 아들마저 어려운 상대여서
어머니는 늘 고독했습니다.
그나마 막내아들이 위로였고
시집간 막내딸이 흉허물없는 대화상대가 되어 고마왔습니다.
17년만에 선교현장에서 귀국한 큰 딸에게 수발 받기를 기다리셨다는 듯
어머니는 몸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자녀들의 사랑을 시험이라도 하시려는 듯
끝내 말이 없으시던 입에서
정말로 아프다하시고
자주 자주 물을 달라하시며
고된 육체를 이리저리 굴리시고 몸을 뒤척이셨습니다.
그나마 잠간
병상에 누우신지 겨우 한달 열흘이 지나자
왼쪽 팔 다리에 마비 증세를 보이시며
등이 무거워진다는 소식을
아내로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그랬듯이
등 밑에 손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몸이 무거워지면
마지막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증거라고들 하는데
2월 15일 주일이 바로 그런 순간으로 다가왔습니다.
조금 차도가 있다는 소식과 함께
아들 왔느냐고 물으신다는 소리를 전해 듣습니다.
다른 기억은 사라져가고
자녀들의 이름과 지난날 찐한 추억만 걸려있는 느낌입니다.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모릅니다.
인생의 날은 고통과 슬픔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늘 성경을 붙들고 사시며
새벽을 기도로 밝혀오신 어머니
어머니께 제대로 해 드린 것이 없는 이 아들은
목을 놓아 울고 있습니다.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잦아드는 모습 앞에서야 비로소
눈물을 흘리는 이 아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우리는
원하시는 대로 살 것입니다.
기도하신 대로 주의 교회를 위하여
건강하게 살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는
영원한 나라에서
아버지와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실 줄을 믿습니다.
물론 우리도 곧 가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처럼 좋아하시던
82장 찬송을 부르면서 말입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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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나의 소망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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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s2012.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