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연휴를 이용, 통일교육문화원 직원들과 함께 일본 평화기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후원교회들의 지원을 받아서 나선 길이라 조심스럽고, 얼마나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여행을 시작하면 '집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늘 생각하는 터라 나이테가 굵어지는 지금, 18시간씩 걸리는 배를 타야하는 여행에 육체적으로 우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년전 대마도를 다녀오다 배멀미를 경험한 터라 귀미테도 붙이고, 멀미약도 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부산항을 떠난 팬스타호는,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편안했다. 파도가 일지 않는 바다를 달리는 배는 전혀 흔들림을 보이지 않는다. 사우나를 할 수도 있는 뱃길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대마도를 지나 혹카이도[北海道]·혼슈[本州]·시코쿠[四國]·규슈[九州]등 4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진 일본 열도 가운데 혼슈와 규수 사이를 지나 일본 내해로 들어선다. 부산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시모노세끼를 지난다. 두 섬을 잇는 다리를 구경거리로 삼는 재미도 있다.
사우나를 하고 한 잠을 자고 나니 일본 내해 깊숙히 들어섰고, 2만5천톤 160미터 길이의 배가 드디어 닻을 내린다. 조금 빨리 출발한 것을 감안하면 꼭 19시간 만이다. 비행기를 탔으면 지구 반대편에 도달할 수 있는 시간이다. 10명이 가는 길이라 배값으로 정식 요금의 절반정도인 15만원씩을 지불했으니 그래도 싸긴 싸다.
이번 여행은 철저하게 평화운동기행으로 일정을 짰다. 일본은 소위 평화헌법이라는 것 때문에 논란도 있지만 평화를 많이 이야기하는 나라이다. 지금 일본은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난다는 소리도 듣지만 일본내에도 많은 지식인들이 군국주의에 반대하고 특회 2차 대전 발발에 대한 책임을 말하기도 한다. 한국은 통일이라는 말이 평화보다 더 자연스럽고 평화는 통일의 다른 한면으로만 생각되는 현상인데, 일본은 과연 어떻게 평화를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먼저 오사까시가 만든 평화박물관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일본은 몇번에 걸친 교과서 파동, 총리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소동에서 보는대로 좀처럼 전쟁의 책임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걸핏하면 그들은 태평양 전쟁을 아시아를 위한 전쟁이라고 변명하기 일쑤다. 과연 일본인들의 진심은 무엇일까?
오사까 평화박물관은 지방정부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이 이룬 박물관으로 지방정부가 운영에 책임을 져야하지만 썩 좋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박물관이라고 하지만 역사의 흔적을 주로 사진과 패널로 그려놓았다. 일본의 조선침략, 아시아 침략 등 침략의 역사를 침략으로 밝혀놓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 때문이리라. '아시아 각국이 원하여 들어간 것이다'라고 줄곧 주창해 온 그들이 침략했다고 역사를 표현하기가 껄끄러웠는데 여기서는 분명하게 밝혀놓았다. 침략을 침략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죄를 죄로 고백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조금만 지위가 있고 나이가 들면 허물을 허물로 인정하려 들지 않고 온갖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가?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말이 있다'고 옛 사람들이 늘 예를 들어온 대로 누구나 자기 허물에 대하여 할말을 갖고 있다. 결점과 허물을 인정하는 것이 죽기보다 어려운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죄인들이 경찰에 잡혀가면서도 끝까지 혐의를 부인한다. 지식인일수록 더 솔직하지 못하고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침략을 침략으로 공개적으로 인정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일본이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오사까 성을 보고 빠른 관광을 마친 우리는 내친김에 오사까에서 평화운동을 한다는 여러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학교수, 학교교사, 평화운동가 등 여러 사람들이 오사까교육회관의 한 방에 모였다. 그들 가운데 특히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왔다. 특히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여교사는 신문에 기고를 하면서 역사교과서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까지 하고 있었다. 9월 26일자로 기사회된 신문까지 보여주며 자신이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려 하는지를 말해주었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과거에 그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지경이라고 했다. 현재도 오까나와 등에서 역사왜곡이 자행되고 있음을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여기서 발견되는 중요한 일본인들의 관심 중의 하나가 바로 일본 헌법 9조의 고수여부였다. 지금 일본 정부는 헌법 9조를 고치려하고 있다. 이미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이 일본국회를 통과하였다고 했다. 3년이 지나면 투표할 수 있는데, 지금 일본 국회내에는 90%이상의 국회의원들이 헌법개정안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일본 국내에는 약 7000개의 소규모 그룹들이 9조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결성하고 있다고 했다. '오사까9조회'같은 식이다.
몇 사람의 발제가 끝난 다음 나는 수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그들의 어떻게 주류 일본인들이 군국주의적 사고를 버리지 않고 자신들의 과오를 철저하게 변명하려는 흐름에 반대하고 평화를 수호하려는 의지가 어디서부터 나오는가 하는 점이었다. 소위 평화사상의 근원이 어디 있는가가 무척 궁금했다.
'나는 기독교 목사로서 평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그 근거는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화목과 평화를 사상적 근간으로 삼고 있는데, 일본인들은 어디서 평화에 대한 소망을 발견하는가 궁금하다'는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간단했다. 그들의 대답은 어떤 이론적 근거가 아니라 실제적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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