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방법, 생각할 점이 있다

essay | 2007/10/09 11:26 | 이성구
지금, 집권여당이라고 부를 수 없어 범여권이라 불리는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이 대통령후보 경선전을 벌이고 있다. 물론 대통합이라고 하였지만 알고보면 도로열린당 수준이고 통합이라고 하였지만 산산조각난 난파선을 연상시키기에 적합한 몰골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일에 얼굴을 붉힐 여유조차 없이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다. 경선을 '원샷'에 한다느니 하며, 선술집에서 한 판을 벌이는 느낌을 주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어떻게하든 흥행을 일으켜야 하는데 정국이 미동도 않는 것 같으니 답답하고 초초하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의 명의까지 도용하고, 대리등록을 하다 '박스떼기' '차떼기'들의 소리를 듣는 지경이 되어다. 이렇게 무능한 집단이 어떻게 집권당이 되었었는지 그저 한심하고 놀라울 뿐이다.

신당은 9명쯤 되는 후보들이 너무 많다하여 예비경선을 거쳐 5명의 대선주자를 선발하였다. 5명이 경쟁하여 최종 후보자를 뽑겠다는 의도였다. 1차 예비경선을 거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위에 대대적인 바람을 만들어 대선까지 가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5명 중 5들을 한명숙 후보가 한동안 3억원이 넘는 등록금이 아까운 느낌을 보이더니 후보간에 연합을 꾀한다며 3등 지지를 선언하고 물러서 버렸다. 1등이 아니라 3등을 연대의 대상으로 삼았다. 얼마 있지 않더니 4등을 하던 유시민이 또다시 3등을 지지하며 사퇴해 버렸다. 예비경선에서 날카롭게 설전을 벌이며 끝까지 완주를 한다느니 하더니 그렇게 쉽게 훌훌 털어버렸다. 3등의 인기가 놀아왔다. 두명의 후보가 모두 3등을 지지하며 물러선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2위가 혼겁을 낼 일이다.

사실 문제는 후보 사퇴니 합종연횡이니 하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예비경선을 하고서 금방 사퇴할 사람이 무엇때문에 남을 떨어뜨리며 경선에 나섰느냐는 하는 것이다. 소위 '친노파'들의 연합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선거전을 이런 식으로 진행시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짓에 다름 아니다. 합종 연횡은 예비경선을 치르면서 말할 일이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으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타 후보의 정첵을 비판하는 역할을 수행하여 자신을 포함한 모든 후보들이 보다 경쟁력있는 후보가 되도록 노력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책임있는 정치인의 역할이다. 그런데 한명숙과 유시민은 바람잡이로 나선 사람으로 자신을 둔갑시켜 스스로를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격하시켜버렸다. 이해찬은 이런 비굴한 연대게임으로 경선판을 뒤집으려는 꼼수를 부린 사람으로 비치게 되었고, 고정성이 깨어진 경선판이 종내 비틀거리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이런 경선을 바라보면서 문득 나는 고신  총회 장로부총회장 선거를 떠올리게 된다. 소위 성총회라고 하면서 장로 부총회장의 선거를 철저하게 세속적으로 치른 이번 선거가 신당선거를 닮았음을 보게 된다. 3명이 출전한 부총회장 선거에서 1차 투표가 끝나자 3위를 한 후보가 선거를 포기하였다. 언뜻 보기에는 좋아보였다. 본래 결선투표는 상위 두 사람이 하는 법이다. 그러나 2차 투표에서 2위가 1위로 올라서 버렸다. 3위와 2위가 연대한 결과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소위 정치적 거래가 형성된 것이다. 계파정치의 타파를 외치던 그들은 철저하게 계파정치를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소위 보수파로 알려진 두 사람은 3위가 2위를 밀어주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이런 선거가 오래전 한국정치 선거에도 있었다. 71년 야당이 대통령 선거 후보를 뽑으면서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 3파전이 벌어졌다. 소위 40대 기수론의 주자들이 대결했다. 1차 선거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순이었다. 그러나 2차 선거에서 3위가 2위와 결합, 김대중이 후보가 되는 이변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선거결과는 3년전 총회  총무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1위를 했던 전호진 박사가 과반획득에 실패하자 2.3위가 연대하여 1위를 밀어내어버렸다. 이런 결과를 보며 씁쓸해지지 않을 사람은 합종연횡을 당사자들 뿐, 보고 듣는 사람들의 기분은 벌레를 씹은 기분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 후보 선거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내 남아있다.

그런데 이런 투표를 보면서 나는 오래전 영국유학시절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았던 경험을 떠올리게 되었다.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가 인두세 문제로 10년이 넘는 세월 집권하던 총리자리에서 물러나고 후임자를 뽑을 때였다. 지금은 이름을 다 잊었지만 존메이저가 총리로 선출되는 영국보수당의 전당대회 선거는 3파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쟁쟁한 고참 정치선배에 고등학교 출신의 40대 초반인 정치 신인에 가까운 존 메이저가 뜻밖에 두각을 나타내었다. 대처의 지지가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고 기억된다. 1차 투표에서 누구도 과반의 득표를 얻지 못했다. 2차 투표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규정은 그렇게 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2,3위 두 후보가 모두 사퇴해 버렸다. 알고보니 영국의 전통은 1차 투표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가 나오면 모두가 승복하여 2차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 되다시피했다는 것이다. 선거인단의 진정한 판단은 1차 투표에서 나타난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후의 투표는 결국 뒷거래도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미 자기후보의 당선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다른 후보를 선택하게 한다는 것은 양심적으로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질 생각을 하며, 그 이후의 댓가를 생각하며 게임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조롱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와 교회는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자격있는 지도자를 뽑는다면서 거래하듯 행동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이 틀렸다면 다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억지를 부리면 술수를 쓰게 되고 그러면 구린내를 피우는 지도자밖에 나올 수가 없다.

동원경선이니 대리경선이니 하며 자기들만의 게임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행위를 이렇게 지저분하게 벌이는 이들이 나라며 민족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대통령 선거가 12월이라는 데 겨우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정당을 만들어 대통령에 나서겠다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인가? 국회의원 한명 내지 못했고, 정치현장이 이제야 들어선 신인중의 신인 문국현씨가 여당을 대신하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나선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경륜을 쌓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야 국가를 경영할 수 있다. 조그만 기업의 사장 했다는 것으로 국가경영에 나서겠다는 것은 어슬프다. 스스로도 고백했듯 준비되지 않은 노무현대통령때문에 쓸데없는 고통을 얼마나 겪고 있으며, 정부각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공기업들이 무슨 부정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오죽 편안하면 공기업 직원이 신랑감 후보 1번이라고 하겠는가?

현재의 상황이라면, 범여권이 대통령 후보 하나 제대로 뽑지 못할 형편이라면 - 민주장도 조순형씨가 후보사퇴하는 난리가 일어났다 - 차라리 대통령 선거는 포기하는 게 그 엄청난 비용이라도 줄이는 것 아닐까? 게임이 안되는 데 뭔가를 해낼려면 또 어떤 해괴한 짓을 벌여 국민을 속이려 할지 모르는 일인데, 언제까지 정치꾼들의 노름을 이렇게 국민들은 맥없이 지켜보아야만 하는가?

사퇴를 언제하는지 개념도 서 있지 않은 사람들을 앞에 세워두고 사는 평범하다 못해, 늘 무시당하고 사는 우리 신세가 정말 처량하다. 한국인은 언제 제대로 된 정치 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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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11:26 2007/10/0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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